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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요약본

녹취록(HWP)

녹취록(DOC)

설교본문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2019년 05월 26일 [2부]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요 5:1~9) | 김현길목사


성도님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서론] 담임목사님께서는 미주대학수련회에 참석하신 후 워싱턴에서 진행되는 북미주 전도집회에 참석 중이십니다. 남은 사역 일정과 건강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기록한 성경이 사복음서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사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누구신가? 그가 이 땅에 왜 오셨으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인 예수가 누구신가?’에 대해 사복음서에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는데 어떤 그리스도인가? ‘왕적인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소개되는 족보 또한 왕의 족보입니다. 짐승으로 표현하면 사자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사자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은 그리스도가 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만왕의 왕이지만 종처럼 철저히 낮아지셔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섬겼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족보가 없습니다. 학자들은 소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는 100% 인간이십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만 예수님의 배고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향해 우는 모습, 피곤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인자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족보가 없습니다. 신학자들은 독수리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 중에서 대표적으로 7개만 선별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없는 기적이며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별된 7개를 표적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나사렛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의 7가지 표적 중에서 세 번째 표적인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사건이 나오는 장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병자는 그냥 단순한 병자가 아니라 38년 된 병자였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사람의 정신과 마음, 가정, 삶은 완전히 무너진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38년 된 병자의 문제와 비슷하게 해결 받지 못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38년 된 자를 치유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는 기쁨을 맛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예배 회복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5:1-2) 이 사건은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나라도 4대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도 여러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서쪽에는 망대문이 있었고, 남쪽에는 힌놈의 골짜기로 가는 쓰레기와 배설물을 버리는 분문이 있었습니다. 또 동쪽으로 실로암 샘으로 내려가는 샘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에는 성전에 이르는 문으로 성전제사로 쓰이는 양과 염소가 들어가는 양문이 있었습니다. 양문을 통과하면 바로 성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예루살렘 성의 북편에 있는 양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양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 혹은 긍휼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베데스다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5:3-4)학자들에 의하면 연못 아래에는 지하수가 흘러 때때로 지하수가 부글부글 거품을 내면서 연못 위로 올라올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과학적 지식이 거의 없었던 사람들이 볼 때는 마치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젓고 가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이때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환자는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환자들이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질병에 대해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수많은 환자들이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서 병을 고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긴장된 모습으로 모여 있던 곳이 베데스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데스다는 모순이 있는 곳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이 낫습니다. 그런데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맹인입니까? 아니면 다리 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혈기 마른 사람입니까? 이 환자들은 생각은 있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음도 있고 소망도 있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림의 떡입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이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베데스다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은 이곳에 올 일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장소입니다.이것이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간절히 필요한 사람은 접근할 수도 없고 별로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 건강한 사람만이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는 베데스다는 완전히 모순된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베데스다는 치유의 장소라고 하지만 필요한 사람들은 절대 치유할 수 없는 절망의 장소요 모순의 장소요 아픔의 장소인 것입니다. 이 현장이 창세기 3장의 불신 현장의 모습입니다. 12가지 영적 문제는 어떤 인간의 힘이나 세상 종교, 미신, 철학으로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 베데스다 연못 위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양문입니다. 양문은 말 그대로 제사에 희생 제물로 사용하기 위한 양들이 들어갔던 문이라서 양문이라는 별칭이 붙여진 것입니다. 느헤미야 31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건축합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때 재건할 때 가장 먼저 수축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북쪽에 있는 양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 332절에 보니까 양문으로 마무리됩니다. 양문으로 시작하여 양문으로 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가 양문을 먼저 수축했다는 사실에서 느헤미야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을 회복하려면 제일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했는가? 성전은 훼파되고 수많은 백성들은 희생되고 70년 동안 포로로 끌려갔는가? 3:15 언약의 백성이요 여자의 후손의 혈통을 물려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왜 무너졌는가? 느헤미야는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피의 예배가 무너졌고, 언약 중심의 예배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배 회복을 위해 양문을 제일 먼저 수축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 신앙의 문 가운데 무너져버린 부분들이 있습니까? 그때마다 회복의 시간은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예배의 문으로 들어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의 질서를 잃어버린 분들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모를 때 제일 먼저 우리가 생명을 걸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양문 수축입니다. 무너져버린 예배를 수축해야 합니다. 물질도 중요하고, 성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모인 사람들은 전설 혹은 소문에 의해 모인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리와 자기 경험과 자기 지식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베데스다는 구원의 연못 같지만, 그 내면은 철저한 절망의 연못입니다. 좌절을 알려주고 무능을 알려주고, 실패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저주의 연못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베데스다를 떠나서 양문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예배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10:7) 이 양의 문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면 영생이 있고 치유와 회복이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상반기 전도운동에 많은 영혼들을 양의 문 되신 그리스도께 인도해 생명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5:5~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에 이르렀을 때 혼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은 혼자 베데스다에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의 사람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장면이 다른 복음서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3장의 당시 최고의 엘리트 니고데모를 만났을 때도 예수님과 니고데모와 일대일 만남으로 되어 있습니다. 4장에도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사마리아 여인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났을 때도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 일대일입니다. 5장에도 38년 된 병자를 만나는 장면도 성경은 일대일로 다루고 있습니다. 8장에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있는 여인과 만남도 요한복음은 일대일 만남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왜 요한복음에서만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과 일대일로 만나는 장면이 다른 복음서보다 많습니까?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과 일대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이런 모순 된 베데스다의 연못에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38년이란 기간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병을 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5:6) 그때 38년 된 병자의 대답은 , 주님, 낫게 해 주세요, 저를 고쳐주세요’, ‘38년 동안 저주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병자의 대답은,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을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8년 된 병자의 관심은 오직 베데스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현장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계셨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 베데스다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으니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삶의 조력자로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조력자,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조력자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소원과 그분의 관심은 무시한 채 나의 아픔과 나의 고통과 나의 염려를 도와주는 조력자라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를 조력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라면 수년 동안 베데스다만 쳐다보고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각인되고, 뿌리 된 체질은 오직 베데스다입니다. 자기 방법대로 하겠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의 능력으로는 베데스다로 갈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고집불통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나 중심의 인생입니다. 38년 된 병자의 목표는 오직 베데스다입니다.

애굽의 바로는 고집불통의 대표자입니다. 애굽의 왕으로 나름대로 화려한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경제 대국을 통한 세계정복입니다. 이것은 모든 파라오의 꿈이요 소망입니다. 언제 바로의 생각이 무너졌습니까? 모세를 통해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독종 재앙, 돌림병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을 애굽과 바로에게 내렸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이 죽는 순간 무너졌습니다. 우리 속에서 이런 고집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집불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의 베데스다에 갇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경험의 틀, 지식의 틀이라는 베데스다에 완전히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애굽의 바로처럼 고집불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 이니(5:8~9) 사람이 38년 정도 병을 앓게 되면 자기 병이 나을 거라는 희망과 소망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 곁에 습관적으로 앉아 있지만,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점점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자포자기한 상태, 무감각한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상태, 무능력한 상태에 있던 38년 된 환자에게 예수님은 그의 공로나 그의 선한 실적을 묻지도 않고 의논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38년 된 병자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성적으로 보면 이것은 불합리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도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8)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언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5:10에도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38년 된 병자처럼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선함도, 인격도, 수준도 안 되는 존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오늘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모습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면서 치유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비합리적이요 비객관적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 사랑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 속에 있는 나 중심의 생각이 무너집니까?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을 깨달을 때 나 중심의 생각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는 한 주간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세상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을 우리의 현장에 증거함으로 상반기 전도운동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516일 강서, 양천 어르신들을 모시고 예원 사랑의 효잔치를 하였습니다. 행사 당일 4,0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오셨습니다. 효잔치 행사를 장로님들과 집사들과 함께 준비하면서 나중에는 더 이상 안 오셨으면 좋겠다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하는데 110분경에 커버넌트홀에 3,000석이 가득 차게 되어서 1,000여 명의 어르신들을 비전홀로 안내하였습니다. 평생 유교와 불교문화권에서 생활했던 분들이 교회 문턱을 넘기가 어려운데 이번 행사를 통해 교회 문턱을 넘었고, 교회 문턱을 넘고 온 어르신들 중 많은 분들이 목사님이 선포하는 복음을 듣고 영접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성도님들의 소원은 가정 복음화입니다. 예원의 많은 분들이 부모님을 초청해서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이번 효잔치는 전도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문턱을 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교회 문턱을 넘고 많은 불신자들이 교회에 오셨습니다.

61일과 2일 국내외 예원 렘넌트를 위한 행복나눔바자회를 합니다. 기증된 애장품은 판매 후 전액 WRC 장학금으로 사용됩니다. 바자회를 하는 이유는 전도의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상반기 전도운동에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어 많은 영혼을 초청하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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