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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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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019년 06월 16일 [3부] 은혜 아래 있는 삶!(롬 6:12~18) | 정은주목사


하나님은 성도님을 사랑합니다.’

[서론] 문삼석 시인이 쓴 그냥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가 있습니다.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서로에 대한 사랑이 이 짧은 시에 아주 사실적으로 묻어납니다. 그냥이라는 말은 짧지만 아주 강력한 말입니다. 문자적으로 그냥이라는 말은 아무런 대가나 조건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그냥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아주 잘 적용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사랑해 주십니다. 어떤 대가나 조건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찬송가 304장에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저와 여러분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오늘 제목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삶하나님의 절대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매 주일 로마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까지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여기에서 해방받는 유일한 길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설명을 해왔습니다. 그 핵심 말씀이 롬5:8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사단 종노릇 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삶으로 완전히 신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6장은 사도 바울이 이렇게 변화된 신분에 걸맞은 삶 은혜 아래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의라는 단어를 한자로 보면 아주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의를 구성하는 한자가 ()이라는 단어와 ()를 의미하는 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린 양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5:9에 보면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인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나 위에 모시고 있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계획을 올바로 따라가는 삶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의로운 삶, 은혜 아래 사는 삶을 통해 오직 여호와의 뜻만을 완전히 세우는데 일심, 전심, 지속으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의의 무기로서의 삶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2-13)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 된 존재로서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는 생활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근원적으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죄로부터 완전 자유 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단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는 영적 존재가 우리를 계속해서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를 미혹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사단의 공격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남자의 수염과 같습니다. 아침에는 수염을 깎아서 깨끗하게 보이지만, 저녁이 되면 덥수룩하게 자랍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다시 깎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이란 ‘daily baptism(매일 세례를 받는 삶)’이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매일 세례를 받는 삶은 날마다 나의 옛 체질은 물속에다가 장사지내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만큼 사단의 공격이 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를 더 이상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의 무기로 드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더 이상 죄에게 당하지 말고 영적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겠습니까? 간단하게 답을 드리면 오직과 집중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집중하는 삶을 살 때 의의 무기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하말티아이며, ‘과녁을 빗나갔다라는 뜻입니다. 화살을 쏠 때 그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벗어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잘못 집중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인생의 좌표를 창세기 3장의 나 중심, 창세기 6장의 물질 중심, 창세기 11장의 세상 성공 중심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결국은 바벨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영적 좌표 설정을 올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1:1의 오직 그리스도, 1:3의 오직 하나님 나라, 1:8의 오직 성령충만의 권능을 힘입어 4천 말씀운동과 237나라 복음화를 향해 믿음의 무한도전 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요 신앙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에 나온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켜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발휘해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천국을 차지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거짓말하지 않겠다, 미워하지 않겠다, 악한 생각을 품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면서 노력했지만, 마치 다 낡아빠진 가죽 부대를 깁는 것과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다 낡아빠진 가죽 부대는 이쪽을 기워놓으면 저쪽이 터지고 아무리 꿰매도 계속해 다른 곳에서 터지기 때문에 꿰매고 꿰매어도 끝이 없습니다. 결국, 우찌무라 간조는 도덕적 총 파산을 선고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 참 평안이 임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 자신의 힘과 노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죄의 권세를 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우리는 강단의 말씀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언약을 붙잡고 정시로, 무시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면 낙담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쳐다보면 절망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삶을 살 때 진정한 의의 무기로 쓰일 수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오직과 집중의 영적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의의 무기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의의 종으로서의 삶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5-16)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영적 정체성이 의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종이라는 말에는 따를 대상이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이라는 말은 홀로 사용하지 않고, 누구누구의 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를 쓰면서 문안 인사할 때 보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를 따르는지 살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로마서의 일차 수신자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영적 진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복한 민족들을 노예로 삼았기 때문에 노예가 많았습니다. 당시 노예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는데,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주인의 선택에 따라 그 신분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주인의 양자가 되어 재산까지도 유산으로 받을 정도로 신분 변화가 가능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삶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마귀의 지배를 받는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의의 종으로서의 삶의 살아야 함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7-18)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의 종이었던 상태에서 해방되어 의에 종이 되었다고 말을 하면서 그렇게 된 이유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한 것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훈의 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의 핵심인 복음을 마음속에 받아들임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의 종은 한마디로 말씀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며, 말씀이 이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도자 D. L 무디(Dwight Lyman Moody)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아주 의미 있는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은 내게 필요할 때 침상이 되었고, 어두울 때 등불이 되었습니다. 일할 때 연장이 되었고, 찬송할 때 악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무지할 때 스승이었고 헛발을 디뎌 빠질 때 반석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각인, 뿌리, 체질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할 때 그 삶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렘넌트 7명 모두 다 말씀을 붙잡고 치유 받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을 붙잡고 시대적 복음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말씀을 붙잡을 때 절대 불가능이 절대 가능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말씀이 이끄는 의의 종이 되어 멋진 인생 작품 만드는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마틴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고 종교개혁 할 때 사단이 이렇게 루터의 생각을 파고들었다고 합니다. ‘너 같은 게 어떻게 종교개혁을 하겠느냐? 너는 이런 죄, 저런 죄가 있는데.’라고 하면서 자꾸 정죄 의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마틴 루터의 대응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의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쓰고 계십니다.’ 아멘이십니까?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 아래 사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사실적으로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은혜를 증거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6장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영적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2-23)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미 영생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제는 의의 열매를 맺는 삶 속으로 들어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은혜 아래 있는 삶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번 한 주간도 의의 무기, 의의 종으로서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언약의 여정 속에 있기를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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