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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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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

녹취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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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서론] 옆의 분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의 기쁨을 누립시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생명을 걸었던 청교도들의 영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을 보면 미국이 정말 기독교 국가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 복음이 없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각 가정은 평균적으로 네 권 이상의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 제일 첫 장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마태복음의 산상보훈이 누구의 말씀인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미국인은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실이 아닙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전 세계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정작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가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성탄 주일을 맞이하여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에 대해 분명히 깨닫고 성탄의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멸시받던 세리 가운데에서도 세리장의 역할을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사건에 대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이 만남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신 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을 통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발견하고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현장에서 밝히 증거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던 중 여리고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사람들 틈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길 가의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세리장이라는 직책에는 상관하지 않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무 위로 기어올랐던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여리고 지역의 세리장으로 겉으로 볼 때 아무런 아쉬움이 없어 보이는 삭개오가 굳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썼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겉은 멀쩡했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동족에게서 세금을 수탈하여 자기 배를 불렸던 까닭에 유대 사람들로부터 온갖 질시를 당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굉장히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삭개오를 향해 다가가셔서 친히 그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본문에서는 ‘삭개오가 예수님의 이 음성에 즉시 내려와 즐거워하였다’고 밝힙니다.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성탄을 맞아 우리는 다시금 영적 눈을 뜨고 현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삭개오와 같이 외롭고 갈급한 영혼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세 가지 배고픔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대화의 배고픔입니다. 누구와도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접촉의 배고픔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해 줄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의 배고픔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될 만큼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해 배고파하고 있습니다. 뽕나무 위의 삭개오와 같은 현대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해답과 결론이 나오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갈급한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여도 내면으로는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해결할 바를 찾지 못해 쾌락에 빠지거나 혹은 점쟁이를 찾아가 인생의 답을 구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전하여 변화되어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향하여 다가가셨듯이 여러분도 모든 걸림돌을 치우고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말하면 저 사람이 들어줄까, 주변에서 뭐라고 할까,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생각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다가가셨던 것처럼 이유 없이, 조건 없이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가시자 주변에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변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이런 저런 말보다 삭개오라는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신 것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눅 19:10)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다가가신 이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인자’는 ‘사람의 아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몸을 입고 지극히 낮은 곳인 이 땅에 오신 까닭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낮은 곳으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탄을 맞아 영혼 구원의 삶을 다시금 회복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옥 안의 사형수들은 언제 끌려가 사형에 당하지 않을까 항상 염려와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24시간이 염려입니다. 불신자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항상 염려, 걱정, 불안 속에 있습니다. 사망 권세 속에 있는 자는 입에서 염려와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답과 결론을 내리지 못한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구원받게 된 것, 참 복음을 깨닫고 훈련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여러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까닭은 궁극적으로는 오늘 본문과 같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 1:38)고 전도를 위해 오셨음을 밝히고 있으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라고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이 말씀에서는 아주 독특한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오신 까닭을 밝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화평과 평강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당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며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화평이 아닌 검을 주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신 궁극적인 일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사역-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의 인간을 회복하여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좌우하고 있는 흑암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1~12) 우리가 대적하여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밝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검을 주신다는 것은 믿음의 영적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불신자가 있다면 그를 육신적으로는 사랑하되 영적으로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육신적인 것, 서론은 양보하더라도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를 대할 때 영적 싸움을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서론적인 것을 양보하고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때부터 진정한 평화, 영적인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참된 평안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전쟁 중에 한 병사가 중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그 병사는 워낙 상처가 깊어 소생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의관이 지나가다가 그 병사를 보고 의무병에게 “이 친구 내일 새벽까지 살아있으면 희망이 있다”라고 말을 던지고 갔습니다. 그 병사는 어렴풋이 그 말을 듣고는 새벽까지만 살아있으면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살기 위해 죽음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죽음이 엄습해 오는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결국 이 병사는 새벽녘이 지나자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군의관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놀라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내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이 말을 듣지 못해 아직도 영적 죽음의 위기에서 갈급해 하는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는 말이라도 입을 열어 이 사실을 전한다면 기나긴 어둠의 인생 터널에서 빠져나올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교, 직장, 사업장, 지역에서 이 비밀을 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참 소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이를 밝히 증거하여 불신 영혼들이 참 소망의 삶을 살도록 하는 뜻 깊은 성탄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