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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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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16: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6: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018년 12월 23일 [2부]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16~24) | 정은주목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서론] 지난주일 2019년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나갈 청지기를 발표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모두가 청지기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청지기의 가장 큰 목적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주인에게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직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섭섭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를 향해 고전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런 영적 자세를 가지고 2019년 직분을 감당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 여러분을 청지기로 택하여 세우신 이유가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항상 있게 하려는 것임을 말씀드렸는데, 혹시 부담을 가지고 염려나 근심을 하신 분이 계십니까? ‘내가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해!’라고 하면서 지레 겁을 먹은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라는 말씀으로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답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는 염려, 근심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염려는 무의식적인 신성모독이다.” 아주 의미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염려, 근심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정말 하나님을 모욕하고 무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모든 염려, 근심으로 사로잡혀 있는 삶은 정말 모순이고 불신앙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의 일을 하는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염려, 근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얻고 참 기쁨, 참 감사 속에 날마다 견고한 응답 속으로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음의 눈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요16:16~18) 우리가 매 주일 살펴보는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을 마가 다락방에서 하셔서 ‘다락방 강화’ 또는,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어서 ‘고별 설교’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과 걱정 속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시니까 제자들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서 우왕좌왕했습니다. 사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이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를 기점으로 약 9시간이 지나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못 본다는 것이고, 3일 후에는 부활하심으로 인해 조금 있으면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 또 못 보지만 대신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셔서 주의 성령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는 것까지 그 의미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19~20)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겠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던 세상, 다시 말해 유대 교권과 그 지도자들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잠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일반 사람들처럼 죄인으로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가 없으시지만 죄인 된 인간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깨끗이 해결하셨다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 예수님의 예언이 다 성취됨을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으로 변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예수님은 해산하는 산모를 예로 들면서 설명했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21~22) 사실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은 온몸이 다 분리되었다가 다시 맞춰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또 아이를 낳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태어난 아이로 인한 그 기쁨이 해산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좀 덜 하지만 과거에는 해산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마치 망각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아이를 많이 낳았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망각의 은사도 필요합니다. 과거의 아픔, 상처, 고통, 분쟁, 미움,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은 다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기쁨을 소유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할 때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주어진 기쁨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이고, 소망의 기쁨이며, 임마누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시는 것만큼 큰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말씀에 대한 올바른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 고난과 역경,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많은 일들 가운데 휩싸이지 말고 영적인 본질인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인생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힘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힘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친히 이 땅에 오셨고, 말씀을 성취하셨고, 지금도 성취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 뿌리내릴 때 새 힘을 얻고 주어진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고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행1:1, 3, 8로 각인, 뿌리,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신앙생활의 기반, 방향과 목적 그리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이 다 담겨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다는 복음의 진리가 신앙생활의 기반’입니다. 그리고 방향과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여기에 실제로 쓰임 받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주의 영인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 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붙잡는 삶 속에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말씀의 권능을 힘입을 때 증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52주 강단 말씀을 붙잡고 이런 영적 전화위복, 역전 인생을 살며 내게 주신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의 무릎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3~24)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데 아주 중요한 핵심이 언약 붙잡는 기도에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통해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든지’라는 표현을 혼동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응답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의 전제조건에 대해서 이미 요15:7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다시 말해서 ‘언약 붙잡은 기도를 할 때 참된 응답이 임하게 되고 이런 기도 응답으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CVDIP의 삶 중에서 앞의 CVDI가 언약 붙잡은 기도의 삶입니다. 언약적 비전을 붙잡고 구체적으로 꿈을 꾸며 기도하면 그것이 이미지화되고, 결국 응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P는 이런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때 인생작품을 만들게 되는 체험이 됩니다. 2019년 전체 방향이 제1, 2, 3 RUTC 시대의 실현입니다. 지금까지 ‘선포된 말씀을 붙잡고, 이제는 구체적인 실현을 해야 합니다.’ ‘모든 영적 삶은 실제 내 삶의 현장에서 실현할 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성자로 불리는 E. M 바운즈 목사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도록 지음 받았듯이,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과 기도하고 대화하도록 지음 받았다.” 인간의 존재 목적이 기도라면 우리는 기도에 관한 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할 줄 몰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로 세상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가 많을수록 사탄은 힘을 잃고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가 나를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문제와 사건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스케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도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의 생애는 항상 마귀와 싸우는 생활인데, 마귀와 싸울 수 있는 무기, 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로 주신 것이 기도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주시기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기도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도에 대한 유익을 이렇게 나열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수단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히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평안을 얻게 하는 수단이다. 기도는 성령충만을 받게 하는 수단이다. 기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깨어 준비하게 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생활을 성장하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영적 유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영적인 담대함을 줍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보면 물이 아무리 깊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이 조금만 깊어도 두려움에 잡혀버립니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그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그것에 파묻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파도를 타고 누리는 삶을 삽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특히 직분을 맡은 분들은 이런 영적 누림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이런 도리어의 영적 수준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의 가사를 보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사는 자세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런 삶을 살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붙잡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1절/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2절/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 이름 전파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3절/ 이 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4절/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우리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또, 무한한 복락 주시는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친구가 되시며, 우리가 행한 일에 반드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바라볼 때 도리어 기쁨이 되는 삶을 당당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 안에 있기만 하면 견고한 응답의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번 주간에는 성탄절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런 근원적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다시금 바라보며 성탄의 기쁨과 함께 그 기쁨의 소식을 누리고 전파하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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