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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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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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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18: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18: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18: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18: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2019년 01월 20일 [3부] 언약적 도전!(요 18:1~11) | 정은주목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서론] 지난 6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분 남우주연상을 받은 크리스챤 베일의 수상 소감이 현지에서 갑론을박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역할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영감을 준 사탄에게 감사한다.” 많은 배우들이 수상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데 그는 이렇게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사탄교회는 트위터에 ‘사탄은 자부심, 자유, 개인주의의 상징이며 우리의 가장 높은 개인적 잠재력을 외부에서 은유적으로 투영하는 역할을 한다. 베일만의 재능과 기술로 그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는 적절하다. 크리스챤 만세! 사탄 만세!’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크리스챤 만세’라는 표현은 베일의 이름이 크리스챤이기 때문입니다. 이름과는 반대로 크리스챤이 아닌 넌크리스챤(non-Christian) 비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사탄교회가 트위터에 언급한 내용처럼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창세기 3, 6, 11장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강도가 앞으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영적 자세는 바로 오늘 제목처럼 언약적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붙잡고 영적 싸움을 싸워나가야 합니다.’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언약적 비전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언약적 비전은 4천 말씀운동의 확산과 237나라 복음화라는 선교 미션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언약적 비전이 실현되는 응답을 맛보기 위해 이제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언약적 도전’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이런 언약적 도전의 삶을 사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부터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고, 불법 재판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이 마치 태풍이 몰아치듯이 숨 가쁘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어떤 흔들림도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미션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언약적 도전이 2019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의 삶 속에 사실적으로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절대 순종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요18:1-2)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을 앞에 놓고 마지막 기도를 하신 후에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 기드론 시내를 건너 한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동산의 이름은 겟세마네 동산 또는 감람산으로 불리는데, 눅22:39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면 자주 오셔서 기도하신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팔 가룟 유다도 잘 아는 곳이었습니다. 그 동산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가룟 유다가 로마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수하 수백 명을 이끌고 완전무장해서 예수님을 잡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군대는 로마의 보병대를 가리키는데 대략 600명의 군사이며 여기에다가 성전을 지키는 경비병들까지 데리고 왔으니 그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체포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체험하고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니 단순히 눈으로 본다고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신비주의, 인본주의가 아니라 언약을 붙잡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붙잡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피하시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만 지금 하나님의 시간표가 예수님께서 창세기 3장에서 발생된 인간의 근본문제 즉 하나님 떠난 문제, 죄 문제, 사단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할 시간표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체포당하시기 위해 그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미션 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보여주신 절대 순종의 특징은 자발성’에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 순종이라 하니까 그 어감이 뭔가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부분은 동산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완벽한 에덴동산을 준비해 주셨는데 그 현장이 첫 사람 아담의 배신과 불순종으로 비극의 현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12가지 영적 문제 속에서 고통받다가 영원한 멸망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절대 순종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운명과 저주가 생명과 구원의 축복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절대 순종을 따라 언약적 도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은 성경 인물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언약 붙잡은 순종입니다. 흔히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믿음의 장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인물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순종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구속사적 관점,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과 불순종의 관점입니다. ‘성경의 스토리는 순종과 불순종의 스토리입니다.’ 창세기 3, 6, 11장 사건의 핵심도 순종과 불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할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고 속국 생활을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언약(말씀)을 붙잡았을 때 회복되는 응답의 맛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언약 실현을 위해 절대 순종을 하시면서 본을 보여주셨는데 피조물인 우리가 절대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가 그 권능을 받는 데에는 오직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스케일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2019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절대 순종의 삶을 통해 언약 성취의 주역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절대 도전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요18:4-6) 예수님의 신적 권위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당신이 나사렛 예수이심을 밝히자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무리들이 오히려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본문에 나온 ‘내가 그니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에고에이미)’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신적 권위 앞에 이들은 압도당하고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도저히 예수님을 체포할 힘과 능력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붙잡히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18:9) 예수님께서는 지금 시점에 체포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데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본문 10절에 보면 베드로는 충동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검으로 말고라는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용감한 모습 같은데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이상의 행동을 감행할 때는 항상 우리의 열정이 망신으로 끝남을 명심해야 한다.” 열정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열정을 발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복음에 방해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충동적인 행동에 대해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18:11)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에게 주어진 잔을 예수님께서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신 잔은 달콤한 잔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 쓴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런 미션 실현을 위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실현에 대한 절대 도전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사자성어에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뜻인데 사리(事理)에 옳고 그름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自己) 비위에 맞으면 취(取)하고 싫으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 삶의 패턴이 이러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절대 도전하는 삶은 이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직분이 지금은 몸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주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합니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함으로 믿음의 절대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직분을 감당하면 하나님의 스케일을 체험’하게 되고, 여러분이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숨은 재능도 계발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쓴잔을 마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롬8:28의 하나님을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손해를 보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9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내게 주신 잔, 내게 주신 직분을 붙잡고 예수님처럼 절대 도전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라는 찬송을 오늘 헌금 시간에 부르겠습니다. 후렴 가사를 보면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가사 내용만으로도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빛난 면류관을 받기까지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 작사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운율을 맞추느라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나는 낡고 험한 십자가를 붙들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그것을 면류관과 바꿀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꿀 것이다, exchange(교환하다)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게 주신 십자가, 내게 주신 쓴잔, 내게 주어진 직분을 확실히 감당하면서 장차 그것을 면류관으로 바꾸는 도전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잔을 피한다면 결코, 면류관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잔 가운데는 피하고 싶고, 무겁고, 쓴잔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발적인 절대 순종, 절대 도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언약적 도전을 통해 미션을 실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2019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확실하게 받는 절대 순종과 절대 도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서는데 기둥같이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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