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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2019년 01월 27일 [2부] 언약의 여정!(요 18:25~27) | 정은주목사


‘옛 틀을 벗고 새 틀로 갱신합시다.’
[서론] 야누스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을 말하는데, 여기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야누스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얼굴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정의에 불타는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쩌면 저렇게 돌변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비겁한 겁쟁이의 얼굴입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너무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베드로와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각종 문제와 사건 속에서 힘이 빠지고 좌절될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부 문제, 자녀 문제, 경제 문제 등으로 고통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 때도 있습니다. 사업을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큰 곤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마치 인생이 부도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패의 수렁에 빠져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런 상황이 결코 끝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오늘 제목처럼 언약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언약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절대 배경이시기 때문에 언약의 여정 속에 있는 삶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어있습니다.’ 인생의 각종 문제와 사건이 걸림돌이 아니라 인생 작품을 만들어가는 발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의 옛 틀이 아니라 언약적 새 틀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영적 시각이 회복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의 무한도전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오직의 눈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요18:15-18) 예수님이 체포된 이후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안에서 불법 재판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두 제자가 예수님의 재판이 진행되던 대제사장의 집 뜰에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베드로고, 다른 한 사람은 요한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또 다른 제자가 요한인데, 요한은 대제사장과 친분 관계가 있었기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갈릴리에서 큰 어업을 하면서 소금에 절인 생선을 여러 지역으로 납품했습니다. 대제사장에게도 납품하면서 친분이 있었고 대제사장의 종들과도 안면이 있어서 이런 관계를 활용해서 요한과 함께 베드로도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을 지키던 여종이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25~27절을 보면 뜰 안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을 때 또다시 질문을 받았는데, 베드로는 재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귀를 베었던 대제사장의 종과 친척인 종이 또 질문한 것입니다. 이때에도 베드로는 절대 아니라고 부인을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 장면을 보면 그 부인하는 강도가 더 심했습니다. 이렇게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고 문제가 생기면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구구절절이 고백했었습니다.’ 마26:33을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막14:31에도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눅22:33에 보면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요13:37에도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구구절절이 자신감 넘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베드로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너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오직의 문제였습니다.’ 베드로의 눈에는 오직의 눈이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말 속에는 공통으로 강조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단어입니다. 나를 외치고, 나를 주장하다가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행1:1, 3, 8의 삶이 아니라 창세기 3, 6, 11장의 자기중심적 옛 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의 나 중심의 삶은 결국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이 되어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군사도 아닌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벌벌 떨고 무너졌습니다.

오직의 삶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으로 각인, 뿌리, 체질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말씀 좀 알고 있다는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충만!’이 되어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이후 겁쟁이 배신자 베드로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서슬이 퍼런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베드로는 완전히 180° 달라졌습니다. ‘오직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오직의 삶이 되어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서는데 실제로 쓰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집중의 힘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사건을 보면 베드로가 보여주었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집중의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눅22:54을 보면 체포되신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여기서 ‘멀찍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이미 베드로가 실패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집중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은 절대 멀찍이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멀찍이 앉아있으면 안 됩니다. ‘예배가 인생의 최우선순위’임을 알고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나와 앞에 앉아서 준비할 때 더 풍성한 은혜와 응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거리가 멀어지면 안 됩니다. ‘항상 예수님과 함께하는 신앙생활, 내 뜻대로 너무 앞서나가도 너무 뒤처져도 안 되는 성령의 세밀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볼 수 있는 강단이 중요’합니다. 강단 말씀을 통해 성령의 세밀한 인도를 받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은 마태복음 26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도 베드로는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기도에 집중해야 할 시간표에 졸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사단의 공격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영적 싸움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베드로는 육적으로 대비하고 있다가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오늘의 기도를 해야 합니까? 기도할 때 영적 싸움을 할 힘과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집중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CVDIP의 언약의 여정 가운데 DI의 핵심포인트가 기도입니다. ‘언약적 비전을 붙잡고 기도할 때 흔들리지 않고 집중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기도가 생활화, 체질화되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았을 때는 오늘 본문처럼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베드로가 기도했을 때는 시대를 뒤집는 놀라운 역사의 주역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마가다락방에서 오직 기도에만 힘쓰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도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였고, ‘성령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현장 변화의 주역으로 집중의 삶을 산 것’입니다.

전 세계 기업의 성공 노하우 중 하나가 선택과 집중입니다. 새로운 기업 환경 속에서 투자해야 할 분야에 대한 전략적 선택과 선택된 분야에 과감하게 집중하는 전략을 추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삶에도 이러한 선택과 집중은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백해무익한 옛 틀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긴 언약적 비전에 올인하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2019년 우리에게 주어진 언약적 비전이 무엇입니까? ‘4천 말씀운동과 237나라 복음화’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한마디로 ‘생명 살리는 운동’입니다. 이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천국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집중할 때 나머지는 더하여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아멘이십니까?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삶’을 살며 더하여 주시는 축복을 모두 다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바둑판 중에서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가장 훌륭하고 좋은 바둑판으로 여깁니다. 이 나무는 연하고 탄력이 있어서 바둑을 둘 때 촉감이 좋고 그 소리가 청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세 판 바둑을 두고 나면 바둑판이 온통 울퉁불퉁하게 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처음 바둑판처럼 면이 아주 매끄럽고 평평하게 원상 복구된다는 것입니다. 독특한 것은 최상의 바둑판은 가운데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흉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상품으로 치는 이유는 금이 간 비자나무가 특유의 탄성으로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나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문제와 사건 속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영적 시각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언약의 여정이라고 바라볼 때 영적 회복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 속에 있을 때도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어도 함께 하십니다.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문제와 사건을 언약의 여정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했습니다.’ 빌1:18을 보면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자신은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다고 당당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영적 시각이 회복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이 멋진 인생 작품 만드는 언약의 여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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