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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019년 02월 03일 [2부] 가문복음화!(요 19:25~27) | 정은주목사


‘가족 구원을 위해서 무한도전합시다.’
[서론] 이번 주간이 설 명절 기간입니다. 지난주에 이미 고향으로 내려간 분도 있고, 오늘 예배를 드리고 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명절이 되면 며느리뿐만 아니라 노총각, 노처녀들의 마음이 복잡하다고 합니다. 가는 곳마다 언제 결혼하느냐고 묻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고향에 가지 않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명절 전후로 친지들로부터 결혼 압박을 받은 노처녀, 노총각들의 신규 회원 가입이 늘어나서 결혼정보업체가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절 전후에는 만나는 상대방의 조건과 자격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게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마음이 무거운 분들이 또 있습니다. 자기 혼자 예수를 믿거나 자기 가정은 예수를 믿는데 부모님이나 친인척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경우 일단 제사 문제부터 걸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금요기도회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제사 문제에 대해서는 고전10:20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분명한 결단을 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절대 육신적으로 감정싸움을 해서는 안 되고, 오늘 말씀 제목처럼 가문복음화라는 언약적 시각을 가지고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서론적인 것은 다 양보하고, 본론에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상태에서 육신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장면입니다. 단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셨지만, 마지막까지 아들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시는 모습입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가족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이 땅에 한 가족으로 사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 특별히 이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가족 중에 아직도 불신자 상태로 남아있는 분들이 있는지, 아직도 종교 생활하면서 복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복음의 참 축복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설 명절에 이런 가문복음화의 응답을 맛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가족 사랑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19:25-26) 예수님께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있는 상황입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향한 부모 공경을 충실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가리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이라는 의미인데, 이 가운데 육신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를 향한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가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가족 사랑은 십자가상에서뿐 아니라 공생애 전의 삶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 30년 동안 목수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눅2:51에는 예수님께서 육신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받드는 삶을 살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만큼 ‘가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 땅에서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가족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처럼 가문복음화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선물은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가족까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이런 가족 구원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루디아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빌립보 감옥 간수도 자신뿐 아니라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문복음화의 축복을 사도 바울은 행16:31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0장에도 베드로를 통해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구원받고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을 모아 기다리다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가문복음화는 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도 여호수아 6장에 보면 기생 라합이 나옵니다. 라합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주었고, 여리고 정복 당시 그와 그 온 가족이 멸망 가운데서 구원받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문 가운데 여러분 혼자만 신앙생활하고 있는 분들은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그 가문이 반드시 복음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선일 교수가 쓴 『모든 사람을 위한 가족전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가족전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를 ‘첫째 가족은 익숙하다. 두 번째 가족은 오래되었다. 세 번째 진지하면 어색하다. 네 번째 우리의 민낯을 잘 안다.’라고 네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전도가 가진 진짜 맹점은 우리 뜻대로 가족을 교회로 끌어당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우리의 됨됨이를 잘 아는 가족은 잘 끌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우리 삶의 평상시 모습입니다. 가족을 구원하려면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더 근본적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좋은 소식이 되어야 영적 영향력을 입힐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고 난 후 나의 BC와 AD가 달라진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상시 진실한 관심이 중요합니다. 많은 가족들이 나를 교회에 데려가는 것에만 관심 있지, 정말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족전도는 진실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이번 명절부터 사실적인 실현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한 응답이 임하게 됩니다. 갈6:9에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이십니까? 이런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불신가문의 복음화를 위해 믿음의 무한도전 하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언약 중심의 가족관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19;27)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이후 그 자리에 있던 제자에게 마리아를 부탁했습니다. 본문 26절에 보면 이 제자에 대해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였던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를 부탁하셨습니다. ‘네 어머니로 모시라는 의미’입니다. 마리아의 노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심으로써 끝까지 책임지신 것입니다. 또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친어머니로 극진히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맺어주신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하실 때 이미 영적 가족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막3:31-35을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에 둘러싸여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불렀는데 너무 거리가 멀어서 사람들이 이 말을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지금 밖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께서 ‘새로운 관점으로, 언약의 관점으로 가족개념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뿐 아니라 교회공동체도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완전 소통을 이루는 원니스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원니스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영적 가족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공동체는 혈연이 아니라 성령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공동체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4:2-3에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믿음이 좋은 한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홀로 신앙생활을 해서 기도제목 이 불신자 남편이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남편은 교회 나가는 것조차 방해해서 이 집사님은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고, 다른 성도들도 이 가정을 위해 집중해서 중보기도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이 여집사님은 저녁 밥상을 잘 차려놓고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해 집에 온 남편이 아내가 집에 없자 화가 나서 교회로 쫓아갔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엿보다가 통성 기도할 때에 예배당이 어두워진 틈을 타서 들어가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예배당 밖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패대기치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사람 살려!”라는 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그 순간 남편이 멈칫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자기 아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자기 아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습니다. 순간 술이 확 깨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알고 보니 맞은 사람이 경찰서장 부인이었습니다. 이 남편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는데, 경찰서장 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교회 나오면 용서해주고 안 나오면 경찰서장인 남편에게 말해서 유치장에 폭행죄로 가둘 테니 선택하시오.” “아이고, 사모님 내일부터 당장 교회 나오겠습니다.” 이일을 시작으로 가정복음화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참 희한하지 않습니까? 하필이면 경찰서장 부인을 끌고 와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도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찰서장 부인도 이 여집사님 가정 복음화를 위해 늘 중보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적 가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가족은 전부 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기뻐할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아직도 불신가문 속에서 외롭게 신앙생활 하는 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원 공동체 전체가 가문 복음화의 응답 속으로 들어가는 증거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어제 2019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끝났는데, 우리나라는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많은 남성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세대교체를 통해 이번 대회에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3:0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경기에서는 일본이 계속 이란에 밀렸습니다. 경기 주도권이 이란에 있었는데, 첫 번째 골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일본이 공격하는 중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공을 몰고 가던 일본 선수가 넘어졌습니다. 옆에 있던 이란 수비수들은 자신이 넘어뜨리지 않았다고 심판에게 항의했습니다. 5명의 수비수가 그렇게 항의하는 동안 넘어졌던 일본 선수는 일어나서 공을 따라가 살려서 센터링했고, 헤딩슛으로 골인되어 첫 골을 넣었습니다.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진행 상태였는데, 이란 선수들은 어이없는 착각으로 골을 허용하고 무너져버렸습니다.

제가 이 말씀 드리는 이유는 ‘가문복음화라는 언약의 여정’ 속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무시당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고집불통이라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일본 선수가 끝까지 공을 살려서 결국 결승점을 올렸듯이 ‘중단없는 믿음의 도전을 하면 반드시 응답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언약적 보장’을 이미 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이십니까? 분명한 언약을 붙잡고 일심, 전심, 지속하며 예원교회 모든 가정이 가문복음화의 응답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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