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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2018년 09월 16일 [3부] 이유 있는 고난!(요 11:1~4) | 정은주목사


‘그리스도는 전능자이십니다.’
[서론] 고난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보면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고난과 역경도 있으며, 국가적인 고난과 위기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북쪽의 대륙 세력과 남쪽의 해양 세력이 자주 충돌하는 지역입니다. 대륙 세력이 흥할 때는 한반도를 통해 해양 세력을 공격하고 반대로 해양 세력이 강해지면 한반도를 통해 대륙 세력을 향해 쳐들어갔습니다. 그 가운데 놓여있는 우리나라가 비록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만 보아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특별한 계획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이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이 시대 제사장 나라로 쓰시기 위해서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서론적인 것에 매여 있을 때가 아니라 237개국 살리는 도전이 시작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기 전에 주어진 기회를 잡고 나가야 합니다.

제가 이 말씀 드리는 것은 모든 문제와 사건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처럼 모든 고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고난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모습은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하지 못하면 나타나는 것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낙심과 좌절 가운데 그 삶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살펴볼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대표적인 7가지 표적 중에서 마지막 표적으로 나와 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7가지 정체성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표적이었고 이 표적을 통해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이 주인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 가족은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눈앞에 나타난 현실 앞에 원망과 불평, 낙심과 좌절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사로 가족에게 ‘모든 고난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발견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는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내 앞에 닥쳐있는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11:1-3)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실 때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있는 베다니 지역의 나사로의 집에 들러서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 가정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5절에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안에 가장 역할을 하는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달려와서 나사로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상식적으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급하게 와도 힘든 판에 이틀이나 더 늦게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장사 지낸 지 나흘이나 지나 시체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얼핏 보면 예수님께서 외면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특별히 받고 있었던 그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는 신앙의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오는 것일까? 예수 믿으면 뭔가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문제는 더 많이 발생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내가 말씀 붙잡고 기도했는데 왜 응답이 이렇게 지체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내 기도를 듣기는 하시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의 뿌리를 보면 전부 다 자신의 기준에 근거한 외침일 뿐입니다. 사건과 문제를 창세기 3장의 나 중심, 창세기 6장의 물질 중심, 창세기 11장의 성공 중심의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행1:1의 그리스도 중심, 행1:3의 하나님 나라 중심, 행1:8의 오직 성령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성경적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각인, 뿌리, 체질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본문 4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11:4) 쉽게 말하면 나사로가 병든 것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된 것은 부활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써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서 부활의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는 예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보여 주시려고 죽은 지 나흘 만에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날 정도로 되었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사기를 당하고, 세상을 사는 것이 두렵게 느껴져도 더욱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지금 너의 실패는 망하는 실패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다.”

복음성가 중에서 고난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영적 자세를 아주 잘 표현한 찬양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일하고 계시잖아요···.’ ‘고난의 뒤편에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그 어떤 고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각종 문제와 사건, 고난과 역경을 영적인 눈으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시50:15를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서 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40:1-2에 이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기가 막힐 정도로 심각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견고한 응답받았다는 말씀입니다. 2018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손으로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그 어떤 문제와 사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언약 붙잡은 기도를 통해 견고한 응답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는 증거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의 성장을 위한 고난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11:21-22)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오셨을 때 마르다가 먼저 마중을 나와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서 설움에 북받쳐 나사로가 병이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으면 하나님께 간구해서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하셨을 것이라고 섭섭한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런 마르다를 향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는 다시 살아날 것을 자신이 안다고 답변했습니다. 마르다는 종말이 되면 모두 부활할 것을 지식적으로 알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지금 살릴 수 있음을 믿는 믿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마르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의 주가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발생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찾아온 죽음의 문제는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된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믿음의 표현으로 답변했습니다. ‘아나이다’에서 ‘믿나이다’로 바뀌었지만, 아직 각인, 뿌리, 체질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화 후에 나사로가 묻혀있던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당시에는 돌을 무덤으로 사용했는데 그 입구를 돌로 막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앞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마르다는 또 불신앙의 말을 했습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벌써 다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 시시변동하는 신앙의 업다운이 심한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마르다를 향해 예수님은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11:4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불신앙, 염려, 걱정, 편견, 절망, 좌절을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왜 아직도 인간적인 믿음, 지식적 믿음 속에 빠져나오지 못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든 마르다는 사람들을 시켜서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옮겨놓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향해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마자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습니다. 이처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들판에 아직 채굴되지 않은 진흙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포크레인이 들어오더니 그 진흙을 파내어 트럭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은 큰 컨베이어에 들어가 잘게 부수어졌습니다. 진흙은 너무나도 아파서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큰 떡메가 이리 치고 저리 쳐 진흙은 완전히 혼절했습니다. 겨우 깨어보니 자신이 도자기로 만들어져 화로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하며 이틀이나 불화로 안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끝나겠지 생각했지만, 고통은 더 커졌습니다. 유약을 바르고 채색을 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화로 속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틀 후에 불화로 밖으로 나온 자신을 보고 진흙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아름다워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들판에 널려있던 보잘것없는 진흙이 아름다운 도자기로 변화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의 고통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아름다움으로 변화되는 기회’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문제와 사건 앞에, 고난과 역경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의 성장’이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항상 “폐하, 잘된 일입니다”라고만 말하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과 신하가 사냥을 갔는데 신하의 잘못 때문에 왕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왕이 분노해서 그 신하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듬해 왕이 다시 사냥하러 갔습니다. 정글 깊이 들어가 길을 잃고 식인종에게 붙잡혔습니다. 식인종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왕의 손가락 하나가 없었습니다. “이 음식은 불량품이다.”라고 하며 왕을 풀어 주었습니다. 식인종에게 풀려난 왕이 감옥으로 가서 그 신하에게 “자네 덕분에 살아났어, 미안하네” 그러자 그 신하가 “폐하,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제가 감옥에 안 들어왔으면 폐하와 같이 사냥 나갔을 것이고 저는 흠이 없는 음식이 되어 식인종의 밥이 됐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복음적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않고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인생 작품을 만드는 시간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생명과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견고한 응답의 주역으로 쓰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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