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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14: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018년 10월 21일 [2부] 나를 믿으라!(요 14:1~6) | 정은주목사


‘성도님은 영원히 보장받은 신분입니다.’
[서론] 어떤 여자가 남편과 두 번째 사별하고 한 믿음직한 남자와 세 번째 결혼했습니다. 새로 만난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에 겨워야 할 이 여자는 몸이 약해지고 얼굴이 날이 갈수록 핼쑥해져만 갔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물었습니다. “어디 불편한 일이라도 있소?” 그러자 부인은 단지 마음의 병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그런가 생각해서 어떻게 더 사랑해주면 되겠느냐며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하니까 부인이, “당신이 또 죽으면 난 어떻게 하나 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만큼 염려와 근심의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성 신학자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염려에 대해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염려한다는 것은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마음속에 혹시라는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 나지 않을까, 혹시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등등. 이런 식으로 아직 오지 아니한 것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 염려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조급해져서 나중에는 우울해져 버립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망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염려, 근심입니다. 마치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두고 엑셀레이터만 무리하게 밟아대면 기름은 들어갈 대로 다 들어가고 소리만 요란하지 차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염려는 에너지만 낭비하게 하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백해무익한 염려와 근심 가운데 빠져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로마 속국 생활을 청산하시고 나라를 새롭고 멋지게 회복하실 예수님과 함께 자신들이 떵떵거리며 살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많은 사람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이런 기대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의 상황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가 맺는다고 말씀하시지를 않나, 성 만찬을 하시다가 갑자기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지 않나, 결정적으로 자기들을 남겨두고 자꾸 어디론가 간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니까 불안, 두려움, 염려, 근심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요13:36 이하에 보면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그러자 베드로가 용기 있게 자신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든지 목숨을 걸고 따라가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도 심한 근심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근심의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함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영적 눈이 열려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는 절대 믿음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견고하게 체험하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완벽한 보장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하며 살던 제자들에게는 이별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습니다. 깊은 근심 속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크게 두 가지로 전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헤어짐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들의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기회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삶에서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변화와 위기의 순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마치 파도가 끊임없이 치는 것처럼 문제와 사건이 발생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때 오늘 본문 말씀처럼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근심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을 성장시킬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근심하지 말고 믿음의 선택을 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6:27에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염려와 근심은 백해무익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단에게 잘 당하는 사람의 특징을 벧전5:7-8에서 밝혔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 누구를 찾는다는 말입니까? 바로 염려, 근심 속에 빠진 자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해결책을 줍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9) ‘하나님이 내 삶을 온전히 책임져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으면 염려,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의 대명사였던 죠지 뮬러 목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염려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고, 믿음의 시작은 염려의 끝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속지 마시고 문제와 사건 앞에서 염려, 근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증명할 시간표로 삼는 영적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근심하지 않아도 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별하는 것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천국에 거처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고 다시 와서 제자들을 그곳으로 인도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거처는 영어로 mansion으로 되어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무주택자가 너무 많습니다. 청년들은 내 집 장만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고, 강남은 아파트 한 평에 1억이 넘습니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하는데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세상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맨션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우리의 삶을 보장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빌3:20에 보면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행을 보장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염려, 근심할 이유가 없고 당당하게 천국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누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천국 체험을 간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천국 체험을 하도록 하셨습니까? 바울이 복음 전하면서 장차 겪어야 할 고난과 핍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할 것을 아시고 그것을 넘어서는 힘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의 눈에는 현실 문제가 작아 보입니다.’ 그 마음에 천국을 두고 있는 자에게는 근심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영원한 천국이 보장된 신분을 실제로 누리며 모든 염려, 근심으로부터 참 자유함을 누리는 절대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원한 보장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14:4-5)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지금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막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의심이 많은 도마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비단 도마뿐만 아니라 제자들 전체의 질문이었습니다. 도마의 질문에 예수님은 생애 최고의 해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영원히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영생의 축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원문에 보면 길, 진리, 생명을 표현할 때 ‘the way, the truth, the life’처럼 정관사가 붙어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삼중직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이 길을 찾지 못하면 방황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름대로 자기 방식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지만 12가지 영적 문제에 빠져 유리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 떠난 인생의 모습입니다. 또 예수님은 죄와 저주로부터 자유하게 만드는 진리이십니다. 요8:32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창세기 3장 사건에서 발생한 죄와 저주 문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인간에게 생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망의 권세에 잡혀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왕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붙잡아야 합니다.’ 요5:24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언약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근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리더쉽 전문가 존 맥스웰(John Maxwell) 목사는 염려가 생각을 통제할 때 자신의 엄청난 잠재력을 조금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예수가 그리스도 되셔서 내 인생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놀라운 신분과 권세를 부여받은 삶을 맛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사실 이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미 다 주어졌는데 우리에게 엄청난 잠재력을 심어놓아 주셨는데 사용하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성령은 지혜, 총명, 능력의 영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영원히 보장된 인생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붙잡고 내게 주신 엄청난 잠재력을 실제로 발휘하며 인생 작품 만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 행복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요즈음 내 삶의 모든 경기에 임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이름 대진표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그 경기의 대진표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 대 골리앗 장군, 누가 봐도 다윗이 집니다. 그런데 대진표를 바꾸면 달라집니다. 하나님 대 골리앗 장군, 누가 봐도 골리앗이 집니다. 모세도 경기 대진표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양치기 모세 대 애굽의 바로 왕, 누가 봐도 모세가 집니다. 그런데 대진표를 바꾸면 하나님 대 애굽의 바로 왕, 누가 봐도 바로 왕이 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 우리 삶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때 염려, 근심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인생의 대진표의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4:6-7에 이처럼 인생의 대진표를 하나님으로 다시 짜는 방법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이십니까?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문제와 사건을 바라보며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평안과 감사로 하나님의 스케일을 체험하는 참된 기도, 절대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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