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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2018년 07월 15일 [2부] 생명의 언약!(요 5:19~29) | 정은주목사


‘하나님 스케일 속에 들어갑시다.’
[서론] 한 고등학교 동창 부부 모임에 닭살 커플이 있었습니다. 동창 모임에 참석한 어떤 친구가 자기 아내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여보, 달링, 허니, 자기 등등 닭살 돋는 호칭으로 번갈아 가며 아내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가 화가 나서 이 친구를 불러내서 뭐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해. 사실은 내가 얼마 전부터 아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래.” 우리가 살아가면서 빨리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빨리 잊어버려야 할 것은 붙잡고 있고 붙잡아야 할 것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은혜는 흐르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영적인 삶을 사는데도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는 금방 잊어버리고 눈앞의 환경이나 문제 앞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하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가 아닌 원망, 불평, 불순종이 각인, 뿌리, 체질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노예시대, 포로시대, 속국시대의 처참한 비극을 겪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집중새벽기도회를 통해서도 말씀드렸듯이, 골리앗 앞에 선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골리앗이라는 눈앞의 문제와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승부사 인생은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혜의식, 감사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한스 셀리(hans seyle) 박사는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 대가였습니다. 그가 하버드 대학에서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특강을 마친 후 단상에서 내려올 때 한 학생이 이 노교수에게 한 가지 질문했습니다. “교수님, 우리가 스트레스 홍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길을 한 가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셀리 박사는 딱 한 마디로 대답해주었습니다. “감사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니까? 이 자리는 오늘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생명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들만이 올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가장 큰 은혜는 생명의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이 생명의 언약을 붙잡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멋진 인생, 생명력 넘치는 행복한 삶 속으로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요5:19-20) 오늘 본문의 내용은 지난주일 살펴본 말씀과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해 주셨던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치유받은 병자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노동을 했다고 문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치유받은 병자는 자기를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얼마 후 그가 성전에서 다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후 예수님을 향해 유대 지도자들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안식일에 하였느냐는 질문을 던지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경악했습니다. 자신들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도 두려운데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니 더욱 광분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이 정한 안식일 규례를 범한 것도 못 봐주겠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르기까지 하니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당하게 되는 직접적 죄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셨습니까? 여기에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영적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온전히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창세기 3장 사건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됩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지난주 태국의 한 동굴에 갇혀있던 소년들이 다 구조되어 전 세계에 기쁨을 주었지만, 이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던 한 잠수사가 산소 부족으로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일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를 구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셔야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죄인 된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구원할 자격을 모두 갖추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결코,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딤전2:4-5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신학적으로 볼 때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부인해도 이단이 되는 것이며 이단은 구원이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수용합니다. 우리가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를 반대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데, 또 다른 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퀴어 축제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WCC는 1975년 제5차 총회 때 이미 개인의 성적 취향에 따라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다고 지지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진리를 가리는 일들이 얼마나 교묘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분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당하기에 십상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인간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다른 것이 개혁이 아니라 바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적인 삶’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25) 인간이 영생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라는 조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누구든지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듣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듣고 믿는다, 듣고 순종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복음의 소식을 듣고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었고, 심판과 정죄를 당하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영적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붙잡고 누려야 할 영적 축복’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운동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살아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화석화된 교회와 박제된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풍자한 말입니다. 복음의 생명력이 상실되어 영적 무브먼트가 사라진 현실을 묘사한 표현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화석화된, 박제된 모습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생명, 예수 능력, 예수 축복’을 온전히 맛보고 누리고 증거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운동의 주역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생명과 심판의 주 예수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요5:26-27) 예수님은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심판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2절에도 보면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심판이 하나님의 독점적인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심판의 신적 권위 또한, 가지고 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구약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본문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말씀을 통해 영혼을 가진 모든 인간은 부활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둘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선한 일과 악한 일의 결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선과 악의 기준은 단순히 윤리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른 기준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영생의 기준으로 제시한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장에 있는 불신자들은 이러한 영적 진리를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롬 10:13-15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매주 현장 전도캠프를 진행하고, 지난주는 인도네시아 보고르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발’로 부르셨음을 분명히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12가지 영적 문제에 빠진 자들에게 행 1:1, 3, 8절로 정확한 답을 주어서 살려내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J. D 그리어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 이름이 ‘서밋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폭발적인 부흥을 체험했고, 서밋교회는 앞으로 2050년까지 전 세계에 천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5천 명의 교회 개척자를 보내며, 최소한 세 국가를 복음으로 뒤덮게 해 달라는 해외 선교의 비전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어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40개의 기적 중에서 39개가 교회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퍼센트로 계산하면 97.5%입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지는 주된 장소는 교회 밖이라고 단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모습을 잘 보기 힘든 곳 중의 하나는 뜻밖에도 교회 안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성문 밖으로 나가 복음의 능력을 어두운 세상 속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장 안에 있는 교회는 누군가를 세상에 보내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담장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가진 우리는 ‘교회 밖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생명의 언약을 확실하게 붙잡고, 여러분의 생각 수준을 뛰어넘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바울처럼 내 스케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에 따른 응답을 체험하는 믿음의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역사를 체험하는 ‘성경적 승부사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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