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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6: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6: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018년 07월 22일 [2부]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요 6:16~21) | 정은주목사


‘예수를 실제로 믿읍시다.’
[서론] 한 젊은 여인이 우범지역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이 지역에 처음 배치된 신참 경찰관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기다려도 될까요?” 그러자 이 여인이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무섭지 않아요.”라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때 신참 경찰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무서워서 그럽니다. 옆에서 같이 기다려 줄 수 있나요?”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감정이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두려움,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 등이 처음부터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움입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원인은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두려움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와서 어디에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이때 아담이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자마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아담의 두려움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두려움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직접적인 장애물’이 됩니다. 두려움 때문에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고 자꾸 피하게 됩니다. 골리앗 앞에 서 있던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서 회피하게 되고 무력감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력한 현장에 소년 다윗이 승부사로 등장하면서 현장의 판세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뿐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 앞에 거함 골리앗이 침몰한 것입니다. 다윗은 영적인 시선을 골리앗에게 맞추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문제와 사건에 잡히지 않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개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라고 담대히 선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스케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로 골리앗을 바라보았습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 어떤 영적인 시선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우리 인생의 오고 오는 수많은 문제와 사건 앞에서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영적 진리를 분명히 깨닫고 견고한 응답의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담대한 믿음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요6:16-18)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가지 표적 중에서 다섯 번째로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에 일어난 표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을 목격했던 군중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요6:14-15의 내용을 보면 군중은 자신들을 구하러 오실 그 선지자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라면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모든 문제를 능히 해결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당시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 대망 사상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육신적인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경제적, 정치적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영적 메시아’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들을 향해 요5:39-40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서론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예수님께 나왔던 것이지 정작 영적인 본질,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나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아무리 연구한다 해도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다’는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흥분하는 무리를 흩으신 후에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고, 제자들도 출세 지향적인 헛된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배에 태워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후, 마치 천하를 얻은 것과 같이 들뜬 분위기에서 배를 타고 갔습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어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 공포, 불안, 절망 가운데 괴로이 노를 젓고 있었다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어부 출신들이 많았지만 어떻게 손 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막6:48절을 보면 이들이 밤 사경까지 풍랑 속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 시각으로 밤 사경은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를 말합니다. 제자들이 저녁을 먹은 후에 아무리 늦게 출발했어도 적어도 6시간 이상은 사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본문 19절에는 이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갔다고 밝혔는데 대략 5km 정도 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폭은 약 10km 정도이므로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사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일부러 배를 타고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배를 타고 건너갔는데 이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믿음으로 살지 않아서, 언약을 놓쳐서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상시에 겪지 않았던 문제까지 몇 배의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연단의 상황 속에서 두려움에 빠지고 절망과 좌절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과연 이런 풍랑이 우연히 발생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을 훈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적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심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과 기적은 본질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을 통해 참된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넘어설 수 있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어떤 풍랑이 불어 닥치고 있습니까? 그 풍랑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담대한 믿음은 판세를 바꾸는 영적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는 눈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의 눈을 여시고 믿음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시3:6절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이 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도망을 칠 때 지은 시입니다. 완전히 도망자 신세가 되고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고 계시므로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서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영적으로 유익한 플러스 사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스케일을 바라보는 믿음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담대한 도전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19-21) 예수님은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큰 위로와 평안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이 지금 함께하고 있으니 모든 두려움에서 참 자유함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심으로 제자들은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절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 평안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내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하는데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와 사건을 다 지배하시고 정복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14:33절에도 보면 이 모든 일을 체험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요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본문의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파도를 밟고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생을 뒤엎는 모든 환난을 발아래 밟아버리십니다. 크리스천들이여, 왜 두려워합니까?’ 성도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발밑으로 내려서 밟아 버리시기 바랍니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참 평안을 주시는 주님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43:2절을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결코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물을 지나고 강을 건너며 불 가운데를 지나는 시간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성령으로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함께해 주시는, 참 보호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믿음의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수1:9절에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 앞에 두려워하고 놀랄 일들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속아서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영적 힘을 가지고 담대하게 믿음의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언약을 붙잡은 여호수아는 물이 흘러넘치는 요단을 건너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미션을 다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24시의 비밀을 누리는 자는 25시의 하나님의 능력과 재창조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도전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으로 끝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시대적, 대표적, 기념비적으로 쓰임 받는 참믿음의 증거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정면돌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해결하고 이겨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 있어서 정면돌파는 너무 중요’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인물들이 한결같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 의식이 바로 정면돌파였습니다. 세상의 거센 물결이 두려워 휩쓸린 것이 아니라 그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서 기어이 승리의 깃발을 꽂고 믿음의 승전가를 불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인물들이 그러했고, 로마서 16장의 인물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히10:38-3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문제와 사건 앞에 뒤로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토록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믿음으로 도전’해서, 나의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스케일을 체험하는 참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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