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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2018년 04월 29일 [3부] 거듭났습니까?(요 3:1~8) | 정은주목사


‘성도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서론] 지난 20일 영국 크리스찬 투데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에 있는 바오로 성당에서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에마누엘이라는 소년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에마누엘을 가까이 불렀습니다. 에마누엘은 교황에게 “아빠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셨지만, 우리 모두 세례받게 했고 좋은 분이셨어요. 아빠가 하늘에 계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교황은, “아들이 아버지를 좋은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며 자녀를 이렇게 키운 분이라면 그분은 정말 좋으신 분이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는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않았으나 선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에마누엘은 믿지 않는 아버지가 천국에 계실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을 버리실까요?”라고 물었고 사람들은 모두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황은 “그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에마누엘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지난 2015년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양심을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께 용서받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아주 많이 악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결코 될 수 없도록 하는 비성경적인 내용이 담긴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착한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64:6에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기준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옳게 살아도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조건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교의 비성경적인 교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아주 사실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착한 행실, 심오한 철학, 종교적 수행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길은 한마디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아멘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 영생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이런 거듭남의 비밀을 다시금 실제로 깨닫고 현장의 불신영혼들을 ‘거듭남의 자리’로 초청하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거듭남의 비밀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3:1-2) 우리는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시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과 함께, 성전 정화 사건은 율법을 통해 주어진 옛 언약의 시대는 끝이 났고, 복음의 새 시대가 열렸다는 영적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정화 사건 이후 바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시고, 유월절 동안 계속 머무시면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예루살렘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또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엘리트 중의 엘리트요, 당대 최고 권력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니고데모만큼 스펙이 좋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영적 진리에 대해 갈급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가 밤중에 찾아왔다는 것은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1:5의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말씀처럼, 어둠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에 대해서 비록 관심과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영적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여전히 영적인 어둠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영적 상태는 예수님과 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표현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니고데모가 아무리 종교적으로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생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영적인 것이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 신앙의 출발점은 거듭남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엡2:1-3에 보면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고,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과 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엡2:4-5을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었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고 영어로 ‘born again’, 신학적으로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당대 최고 엘리트라는 니고데모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산부인과 개념으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향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반문하실 정도로 영적 부분에는 완전히 무감각했습니다. 이처럼 영적 부분은 뛰어난 학식을 가지고 있어야 깨닫는 것이 아니고, 지위가 높다고, 권력이 있다고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고전2:13을 보면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께서 깨닫게 하지 않으시면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야 합니다. 형편과 환경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잘 사는데 저렇게 학식이 뛰어난데, 저렇게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겠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솜 10kg과 돌 10kg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무겁겠습니까?” 아마 순간적으로 돌 10kg이 더 무겁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솜은 가볍고, 돌은 무겁다는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런데 솜과 돌의 무게 10kg은 똑같습니다. 이 말씀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의 벽을 완전히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통해 이러한 영적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불신자들은 전부 다 구원받을 대상’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5월에 진행되는 ‘복지선교나눔축제’와 상반기 전도운동을 통해서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거듭남의 영적 비밀을 확산시켜 나가는 현장전도제자’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거듭남을 누리는 삶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3:5-7)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산부인과적인 질문에 대해 정확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물은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주지 않으시면 결코 거듭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전2:12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거듭남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깨달아진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계심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에 있어서 물에 대한 해석을 천주교에서는 물세례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영세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영세가 구원을 얻은 보증서가 되는 것처럼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천주교의 주장은 완전히 성경과는 다릅니다. 제가 간단하게 실례를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구원 얻는 강도가 나오는데 이 강도가 세례받았습니까? 받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달려서 예수님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그는 구원을 받았고 천국에 간 것입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자가 자기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고백하는 신앙고백일 뿐이지 결코 구원의 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 예수님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을 비유로 들어, 거듭남을 다시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헬라어로 ‘프뉴마’인데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치 성령의 역사는 바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지만, 바람이 분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바람과 성령의 공통점은 둘 다 존재를 알 수 없지만, 그 효력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거듭남의 신비와 함께 거듭남의 사실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십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이 단순히 신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바람 부는 것을 느낄 수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때 공기와 바람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므로 우리의 삶에 변화된 증거가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과거에는 그렇게 좋던 것들이 예수님 믿고 나니까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 듣는 자리가 좋고 예배, 훈련, 시간 내서 캠프 가고, 주의 일 하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거듭남의 사실성을 날마다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변증학자 댈러스 윌라드(Dallas Willard)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거듭남의 축복을 실제로 누리고, 그 누리는 모습을 통해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입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 눈은 현장을 바라보게 되어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삶의 모든 현장에서 거듭남의 축복을 날마다 더 풍성하게 누리며 영적 영향력을 입혀나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4월 27일 금요일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박정책이 북한을 대화의 자리로 나오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남북 간 대화와 교류 없이는 서로 간의 관계 개선이나 통일이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번 정상 회담을 우리 측에서 준비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바로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였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과 통일을 향한 기대감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평화의 새로운 시작은 거듭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가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만큼 영적으로 시급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내가 누리는 이 ‘거듭남의 축복을 삶의 현장에서 증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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