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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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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018년 06월 17일 [3부] 예배자의 기쁨!(요 4:19~24) | 정은주목사


‘항상 기뻐하고 감사합시다.’
[서론] 현대인들의 얼굴이 갈수록 굳어진다고 합니다. 왜 얼굴이 자꾸 굳어지는지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성형을 많이 해서 굳어지기도 합니다. 너무 많이 고쳐서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고 얼굴의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흙으로 빚어서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흙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의도적으로라도 표정을 밝게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냥 있으면 화난 표정이 되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는데, 오늘부터 우리 서로 웃는 얼굴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오늘 말씀 제목이 ‘예배자의 기쁨’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기쁨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한 주가 꺼림칙해서 오셨습니까? 미국에서는 ‘급행예배(Express Worship Service)’라는 예배가 있습니다.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의 한 교회는 급행예배를 드리는데, 예배의 모든 순서가 20분 안에 끝난다고 합니다. 이 급행예배는 골프, 낚시, 등산, 여행 등의 일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된 것인데, 많은 사람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은 ‘파킹랏 예배(Parking Lot Service)’가 있습니다. 파킹랏은 영어로 주차장이라는 뜻인데,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야외극장처럼 주차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차 안에서 편안하게 예배드리도록 고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참 너무한다고 말씀하실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실 때 정말 기쁨으로 나오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큼 축복 된 자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예배자로 서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양과 경배를 받기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왜곡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형상이 회복되고 다시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주어졌지만, 창세기 3장의 옛 체질과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원리인 예배자의 기쁨을 회복하며 하나님께 최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경적 예배자로 다 서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참되게 예배하는 기쁨
오늘 우리가 살펴볼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있는 한 여자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영적 진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혈통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이 여자는 유대인이 그토록 혐오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마리아 한복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를 만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영혼의 갈증을 해갈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생명의 복음을 맛본 이 사마리아 여자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기쁨을 다시 맛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직도 목마른 분들이 있습니까? 오늘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19-20)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어떤 것이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드리는 것인지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궁금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자신의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이 있다 하더이다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이 산은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그리심산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북쪽의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심산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께 예배드린 곳이며, 신11:29-30을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이 산에서 축복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심산이야말로 전통적으로 정통성을 가진 예배 장소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유대 사람들은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만이 예배드릴 장소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솔로몬이 거기에 성전을 지었기 때문에 예루살렘만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장소라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 장소가 예루살렘이냐, 그리심산이냐 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심각한 갈등 소재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 중요한 결론을 내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4:21-22) 이 말씀은 더 이상 구약적 개념인 장소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대상이며 ‘예배 본질은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본문 22절에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 안에 담겨 있는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형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참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러시면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의 모습을 확실하게 밝혀주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예수님께서는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영적인 것이며,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데 있습니다.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며,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소통은 설교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전 순서에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는 설교를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설교만 들으면 예배를 다 드렸다는 생각은 갱신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에 지각하는 사람들은 설교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매번 늦는 것입니다. 저도 강단에서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우리가 한 주간 강단 말씀을 붙잡고 삶의 현장에서 영적 싸움을 싸워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만 들으면 예배를 다 드렸다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며,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중세시대 천주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예식 중심으로 많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 일반 교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예배참여자가 아니라 방관자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잘못된 예배를 개혁하기 위해 말씀을 강조한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한 것입니다. 말씀 중심의 예배는 설교 중심의 예배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예배의 모든 순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고, ‘순서 하나하나에 영과 진리로 참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설교 전에 예배당에 들어오면 되고, 축도만 받고 돌아가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한다면 결코 참된 예배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온전한 예배를 통해, 모든 예배를 통해, 성삼위 하나님과 소통하며 최고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참된 예배자의 기쁨을 실제로 맛보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삶으로 이어지는 기쁨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참된 예배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동네에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음식을 사 와서 예수님께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당황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누가 잡수실 것을 먼저 갖다 줬는지 서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이 말씀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삶에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참된 예배자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통해 붙잡은 ‘말씀을 삶 속에 잘 실천하면서 응답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참된 예배의 모습입니다. 롬12:1-2에 보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히13:15에도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참된 예배자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예배의 핵심이 바로 생명 살리는 기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4:35-36) 본문에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 하는 말은 당시 떠돌던 격언입니다. 씨를 뿌리고 거둘 때까지 최소한 4개월은 걸린다는 뜻으로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추수는 이렇게 여유 부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오셔서 새 시대를 여셨고,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표가 아니라 ‘추수의 시기’라는 말씀입니다. 거기에서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사마리아 여자를 전도해서 그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배고픈 것이 다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주께로 돌아오고, 그가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와서 그리스도를 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이틀간 거기에 더 계시면서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최고 기쁨’이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삶 속에 이런 예수님의 기쁨, 영적 배부름의 기쁨이 날마다 더 풍성히 넘쳐 흘러나와서 견고한 응답의 주역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이런 글이 있습니다. ‘달력의 주일 표시는 모두 빨간색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는 길도, 하는 일도 모두 멈추라는 신호등의 정지표시와 같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일과 주님을 위한 일 외에는 하지 말라는 적신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일 외에 하던 세상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위험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말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창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그날은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안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향해 놀라운 축복의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서는 것에 창조적 안식의 축복과 기쁨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매 주일 이런 예배자의 축복을 실제로 맛보며 한 주간 삶의 현장에서 ‘참된 예배에 성공하는 변화의 주도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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