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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4: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4: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2018년 06월 24일 [3부] 예수님의 기대!(요 4:46~54) | 정은주목사


‘말씀 순종이 믿음 성장입니다.’
[서론] 요즘 월드컵이 한 참 진행 중인데, 과거의 열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를 하고 같은 조의 다른 팀이 강팀들이기 때문입니다.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1:0으로 패했는데 안타까운 점은 유효슈팅이 하나도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멕시코와의 경기도 2:1로 졌지만 우리는 우리 대표팀의 전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면서 기대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도 우리의 모습과 상관없이 우리를 향해 기대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믿음의 성장이 있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한 번 기대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심, 전심, 지속으로 변함없이 우리를 향해서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눈을 열고 이런 예수님의 기대에 맞는 믿음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기대에 놀랍게 부응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가 바로 왕의 신하였습니다. 왕의 신하의 이름이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당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분봉 왕 헤롯 안티바의 청지기 구사 아니면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으로 추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전도사역을 하실 때 가나 지역을 다시 방문하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곳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번째 표적을 행하셨는데, 바로 왕의 신하의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신 것입니다. 이 표적을 행하시는 과정에서 믿음의 성장을 원하시는 예수님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본문 말씀을 통해 ‘믿음의 성장을 원하시는 예수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음의 성장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4:46-47)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 복음 전하신 후 원래 목적지였던 갈릴리로 가셨는데, 갈릴리 가나에 이르렀을 때 한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왕의 신하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왕의 신하라는 직책을 볼 때 인간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병은 전혀 나을 기미는 안 보이고 더 심해졌습니다. 이때 자신이 관리하던 지역으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신하는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행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푸셨다면 자기 아들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즉시로 달려온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거의 죽게 된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왕의 신하의 요청에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왕의 신하는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자존심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청하는데, 예수님은 이 신하를 냉대하듯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이르렀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같은 고향 사람이고 목수 출신이라고 예수님을 무시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유월절 기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듣고 나서는 그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왕의 신하에게 이런 갈릴리 사람들처럼 눈으로 보이는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그런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신하는 이런 예수님의 냉대에 전혀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다시 예수님께 자신의 아이가 죽기 전에 가버나움으로 내려와서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요4:50-51)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이 신하가 이해하기 힘든 말씀 하셨습니다. “네 아들이 살아있다” 네 아들이 살아있으니까 가서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죽어가는 아들을 보고 왔는데 기도 한번 없이, 와서 안수도 하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말을 믿어야 하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아주 놀라운 반응을 했습니다. 예수님께 일언반구 질문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아들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말이 쉽지 똑같은 상황을 당했다면, “아니 나를 무시해!” 하면서 화를 낼 수도 있을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기대’했고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기대대로 ‘보고 믿는 초보적 믿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납니다. 사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전부 다 공사 중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시험들 일들이 발생합니다. 섭섭 마귀, 이간 마귀, 질투 마귀, 거짓말 마귀 등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와 사건 앞에서 영적 해석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왕의 신하가 정말 섭섭한 마음을 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믿음이 성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왕의 신하 마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셔서 아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방법은 달랐습니다. 이럴 때 영적 선택이 정말 중요합니다. 내 생각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시험 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바로 서야 합니다.’

종교 사상가 키에르케고르는 “당신이 하나님께로 순종한다면 모호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단순해질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마귀가 절대로 못 하는 일은 단순해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단순한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복잡한 마음이 드는 순간 ‘사단이 가라지를 뿌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문제와 사건 앞에 단순히 예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왕의 신하처럼 말씀만을 믿고 가는 믿음의 성장이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증인으로 당당히 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의 열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요4:51-53)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가는 길에 아들의 회복을 알리려는 종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나은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라는 말씀을 하신 그때인 줄 알고 예수님께서 회복시켜주셨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신하의 아들이 나은 것을 확인했다든지, 어떤 병에 걸렸었는지, 그 아들이 병이 나은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만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성장한 ‘믿음의 결과가 영혼 구원의 열매로 맺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 어떤 병에 걸렸었는데, 기도했더니 그 병이 깨끗이 나았으며 그 후에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았다고 하든지 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그 문제가 다 해결되고 더 큰 복을 받게 되어 잘살게 되었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표적에는 이런 식의 간증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신하 본인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가문 복음화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의 가정도 이렇게 되길 바랍니다. 아직도 불신 가문 속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불신 가문이 복음의 명문 가문으로 바뀌게 되기 바랍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벧전1:9에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우리가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54절에 보면 이 기적이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7가지만 선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표적이라고 하면서 다른 공관복음서의 표현과는 구분하고 있습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하는데, ‘그 기적 안에 하나님께서 담아 놓은 영적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자 하는 영적 사인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이 밝힌 표적의 목적이 요20:30-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이 치유 사건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라고 기록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주인 되심을 선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자를 본 일도 없고 진찰하신 적도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모든 것을 아셨고 생명의 주인으로서 치유와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주간 삶의 현장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될 때 놀라운 영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이런 열매 맺는 응답이 여러분 가정과 삶의 모든 현장에서 풍성히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복음을 영화롭게 하라』는 책을 쓴 김용의 선교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평신도 집사 시절에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갈등하다가 기도원에서 한 목사님을 만나 결단을 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 기도원에 기도 하러 들어왔던 목사님이 자꾸 자신의 기도보다는 김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가 나온다며 선교사님에게 무슨 일로 여기에 와 있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이때 김 선교사님이 “아휴, 무슨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사명인지 뭔지 받았는데, 오갈 데가 없어서 그냥 대책 없이 여기 와 있는 거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거참, 집사님은 준비가 다 됐네. 딱 한 가지만 있으면 되겠네.” “아니, 목사님, 절 잘 모르셔서 그러시는데 저는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준비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목사님이 대답을 듣더니 말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준비 다 됐습니다. 딱 한 가지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돌덩어리 같은 믿음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김 선교사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못 들어본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 자신의 영혼이 ‘아멘’하고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 앞에 서원했다고 합니다. “아멘, 아멘. 주님 됐습니다. 주님 이제 절대 저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마십시오. 길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냥 사인만 하십시오. 그러면 저는 오(O)자 케이(K)자입니다. 오케이(O.K.)입니다. 주님 사인만 하십시오. 이제는 O자 K 자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오케이라고 대답했을 때 그 영혼에 너무 놀라운 기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 앞에는 무조건 오케이 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의 지금 수준, 모습, 형편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는 무조건 오케이 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믿음의 성장’을 이루며,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시대적, 대표적, 기념비적으로 쓰임 받는 견고한 응답의 주역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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