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홈페이지    회원가입 로그인 ID/PW 찾기

주일예배


수정 삭제

요약본

녹취록(HWP)

녹취록(DOC)

설교본문

22: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22: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22:56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22:57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22: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22: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22: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22: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018년 01월 21일 복음의 회복력(回復力)!(눅 22:54~62) | 정은주목사


“오직 예수로 모든 것을 회복합시다.”
[서론] 이 세상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입에서 나간 말입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둘째는 화살입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셋째는 흘러간 세월입니다. 흘러간 시간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기회’에 대해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시90:12에 이렇게 간구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모세는 날을 계수하는 지혜가 있게 해달라고 간구할 정도로 시간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2018년 새해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라는 언약을 붙잡고 새롭게 Oneness 출발을 했는데,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언약 성취의 삶을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계5:12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히 누리면 우리도 그 안에 담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을 사실적으로 맛볼 수가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복음의 회복력(回復力)’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아주 핵심적으로 붙잡고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4:7-9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복음은 그 어떤 상황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사는데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불법 재판을 받으실 때였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불과 몇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에 의해 체포되셨을 때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은 전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고백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마자 언제 그런 고백을 했었느냐는 듯이 모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나마 베드로는 양심에 걸렸는지 예수님이 심문을 받고 계시던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조용히 뒤따라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는데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 사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하셨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으로 인해 형언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후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본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본문의 사건에서 베드로의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이후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놀라운 현장 변화의 역사를 일으켰던 중심인물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의 힘이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2018년 복음의 회복력을 확실히 믿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고한 응답의 주역으로 서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연약한 인간의 의지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눅22:54-56)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후에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집 뜰에 앉아서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에게 갑자기 한 여종(계집아이)이 와서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라고 말을 하니까, 베드로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와서 베드로를 향해 너도 그 도당이라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다”라고 더 강하게 부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베드로가 갈릴리 사람이고 참으로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장담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마26:74을 보면 이 장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배신을 해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의 의지는 로마 군병도, 대제사장의 부하들도 아닌 아무 힘없는 계집아이 여종의 말 한마디에 허물어져 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이렇게 연약한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 베드로를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베드로와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면 베드로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깨어 기도하라’라는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준비할 시간표를 놓치게 되면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해도 사단의 공격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옛 체질 그대로 있다가는 속절없이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하고, 훈련이 중요합니다.

예배와 훈련의 특징은 자기의 옛 모습을 내려놓고 새 체질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엡4:22-24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강조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5:8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옛 체질에서 벗어나 참 복음의 진리로 새롭게 각인, 뿌리, 체질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훈련을 통해 갈보리산, 감람산, 마가다락방의 언약을 체험’해야 합니다. ‘행1:1의 오직 그리스도, 행1:3의 오직 하나님 나라, 행1:8의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변함없는 언약적인 진리로 완전히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모든 예배와 훈련에 성공하여 그 어떤 사단의 공격도 다 물리치고 견고한 응답을 체험하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시 시작하게 하는 복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눅22:61-62)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마자 닭이 울었고 그 순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뒤돌아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던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대성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던 그의 교만함이 깨어지고 예수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눈길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많은 성경 해석가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그 눈길은 사랑과 연민의 눈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눈길이었던 것입니다. 눅22:32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미 실패할 베드로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롬8:26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이 어떤 환경과 어떤 어려움 속에 처해 있더라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고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부활하신 후 낙심 속에 있던 베드로를 찾아가 다시금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요21장에 보면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게 하시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시며 다시 일어서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말이지만, 참 복음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게 하는 원인 제공자 사단을 영적으로 대적해야 하고 영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단에 속아 미혹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실족한 한 영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영혼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복음적인 시각을 다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 살리는 선택, 다시 시작하게 하는 복음적인 선택을 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의 주역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제가 최근에 [밥보다 예수]라는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 세대 예수쟁이 열두 명이 간증하고 소설가 강영길 씨가 글로 정리한 책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보여준 분들의 믿음이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두 명의 권사, 집사님이 아닙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에 보면 전국 각지의 시골 마을에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열두 명 모두가 하나같이 자랑하며 고백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고된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예기치 않은 삶의 난관 속에서 말없이 손 내밀며 모든 것을 내어준 그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당장 먹을 한 끼 식량이 없어도, 예수에 미쳤느냐며 손가락질하는 가족들의 핍박에도 그들은 꿋꿋이 신앙의 양심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밥이 곧 생명 줄이던 시절에 밥보다 귀한 예수를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백묘숙 권사(1933년생)- “너 예수 믿고 죽을래? 예수 안 믿고 살래”하면 나는 “예수 믿고 죽는다고 할 것이다.”
국경희 권사(1928년생)- “나 혼자 안 살았소. 예수님과 살았소.”
홍순이 권사(1938년생)- “맞아유, 전 예수에 미쳤어유. 미칠려믄 아주 미쳐야 해유.”
장순복 권사(1924년생)-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나와 내 가족이 예수 믿은 것이다.”

‘밥보다 예수’에 나온 분들은 “예수면 다냐고?”라는 질문에 언제나 자신 있게 외칩니다. “그래, 예수면 다다!” 이분들은 한마디로 ‘오직’이 되신 분들입니다. 비록 우리처럼 복음이 정확하지 못했어도, 그들은 복음의 회복력을 사실적으로 체험했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2018년 우리가 견고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를 견고히 세우시는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적인 영적 체험을 맛보는 새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